다섯 해를 묵묵히 달렸지만, 공식 기록으로 내 실력을 재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. 닫힌 도로, 선선한 공기, 변명할 곳 하나 없는 조건. 드디어 시계와 정면 승부를 걸었다.
기록: 1시간 32분 53초.
초심자의 운이 한 숟갈 섞였을지도 모르겠다. 그래도 대부분은 그동안의 조용한 훈련이 제 할 일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. 동시에 620명이나 먼저 결승선을 넘었다는 사실은, 기분 좋은 불편함을 남겼다. 겸손을 가르치고, 동기를 더하는 숫자. 당분간 내 최고의 코치는 이 숫자다.
마지막 1km는 흐릿했다. 다리는 항의하고, 폐는 흥정을 하고, 머리는 이상하게 차분했다. 결승선 앞에서 번쩍이는 순간 피로, 기쁨, 오기가 한 프레임에 겹쳐졌다. 그 느낌을 오래 가져가려 한다.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. 더 단단한 언덕 훈련, 더 현명한 롱런, 더 절제된 페이스와 마지막 스퍼트. 기준은 세워졌고, 이제는 올리는 일만 남았다.